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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3·8민주의거' 학생 6명..국가유공자 되다/데스크

◀앵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4·19 혁명이 올해로 63주년을 맞았는데요,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 민주주의 혁명의 시발점이 됐던

대전 3·8 민주의거 참여 학생 6명도

그 공을 인정받아 국가유공자로 선정됐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긴 한데

아직도 대전 3·8 민주의거의

역사성을 알리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박선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960년 3월 8일,

독재정권에 맞서 거리로 뛰쳐나갔던

대전의 고등학생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이학수 씨는

다음 날 대전 지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연대 시위에 참가하려던 계획이 들통나

경찰에 끌려갔습니다.




최경순/3·8 민주의거 참가자 이학수 씨 배우자

"집에서 맨날 지켰대 경찰들이 와서.

대문 앞에 와서 항상 거주하고 있었대,

못 나오게."



충청권 최초의 학생 운동이자

4·19 혁명의 기폭제로 평가되는

대전 3·8 민주의거.



이학수 씨를 비롯해 당시 거리로 나섰던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 6명이 4·19 혁명

국가 유공자로 선정돼 정부 포상인

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




박만근/유공자 故이효석 조카

"그동안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좀 더 자랑스럽기도 하고 저희 삼촌께서 아마 생존해 계셨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유공자 선정을 위해서는 신문이나

경찰 기록 등 객관적 자료 제출이 필요한데,

개인이 찾기 어렵다는 판단에

국가가 직접 나선 겁니다.



하지만 3·8 민주의거 당시 참가자들은

아쉬운 마음도 큽니다.



4·19 혁명유공자로 인정받은 수는

천 명이 넘지만, 이 가운데 3·8 민주의거

활동으로 인정된 유공자는 11명에 그칩니다.



7개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던 규모에

비하면 유공자 수가 너무 적다는 겁니다.




최우영/前 3·8 민주의거 기념사업회장

"보증을 해서 추천한 분들은 심사에서 다

탈락하고 있습니다. 시위의 규모에 비해서

우리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많이 멀어져 있다.."



실제 대전 3·8 민주의거는

5년 전인 지난 2018년에야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이학수 씨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유공자 포상 수여식에 참여한 이유는 단 하나,



후손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맞서 싸운

어른들을 기억하며 역사를 잊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학수/3·8 민주의거 참가자

"교문을 박차고 나갈 적에는 떳떳하게 나간

거야. 사익을 위해서 한 거는 절대 없으니까.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이 기죽지 않고 사는

길을 찾는 거지."



MBC 뉴스 박선진입니다.



(영상취재: 황인석)
박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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