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꼭 71년째 되는 날입니다.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뀔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의 아픈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이승섭 기자가 6·25 참전 용사들을 만나
1,129일의 기억을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6·25 전쟁이 시작된 1950년.
양준태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그 해 9월 28일, 국군이 서울을 되찾자
양준태 할아버지는 석 달 만에 등교했는데,
그 길로 학도병에 차출됐습니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전우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중공군에 포로로 잡혀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양준태 6·25 참전용사(89세)
"(식사를) 주는 게 밥 한 끼죠. 밤에
이동할 때 소위 얘기하는 공기 같은 데에다가
죽 한 그릇 주는 것이 (전부였어요.)"
역시 학생이었던 조필희 할아버지도
전쟁통에 끼니를 때우고자 군복을 입었습니다.
조필희 6·25 참전용사(88세)
"피난을 내려가니까 먹을 게 없잖아요.
그래서 16살에 해병대로 자원해서 들어간 거죠.
전쟁이란 전쟁은 다 치렀어요."
포탄이 빗발치던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기를 1,129일.
백발이 성성해진 노병은 71년 전의 기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조필희 6·25 참전용사(88세)
"울릉도에서는 인천으로 상륙 작전을 하고,
나 같은 경우에는 처도에서 남포로
상륙 작전을 해서 인천팀과 우리 처도팀이
합치는 게 (임무였습니다.)"
희생자 수만 460만 명에 이산가족 천만 명을
만들고, 국토의 80%를 폐허로 만든 6·25 전쟁.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최관환 서울시 중곡동
"지금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호국영령들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도록
생각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오늘 열린 6·25 71주년
공식 기념식에서 참전 용사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일을, 세대를 이어 자랑스러운
유산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습니다.
MBC 뉴스 이승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