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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주신 최고의 선물
1993년 12월11일 간경화 말기란 진단을 받으시고 삶을 포기하시며
술을 드시면 안되는 상황에 아버지는 술을 마셨고 임종을 기다리시던 어느날
우리 삼형재를 불러 않히시고 너희들이 할머니와 어머니 잘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저희와 이별을 하셨습니다
제가 고2때 일이지요 아버지 임종을 보면서 재일 마음 아파던일이 생각이 납니다
이일로 아버님의 모든 과거와 얼마나 마음아파 하시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오셨는지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죠
1986제가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일입니다
이일로 저는 담배와 의 인연을 끊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요
방과후 저는 숙재를 하기위해 안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잠시후 아버님은 담배 한개비를 꺼내시고는 불을 붙이셨어요 여느때처럼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저의 코로인해 뇌를 자극하는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고 이 냄새가 싫었던 저 로써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한손에 가위를 들고 있었고 이가위가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향해가고 있었고
끝내 담배 한모금을 깊게 들이시는 아버지 뒤로 돌아 가위로 싹뚝!
아차 싶더니 갑자기 쏴한 느낌과 함께 오른쪽 빰이 번뜩이더니 머리위에서 별이 보이기 시작 하는겁니다
순간 상황 파악을 한 저는 빌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안방에서 거실로 달아났습니다
이에 격분한 아버지는 재털이를 들어 저에게 던지셨고
도망치는 제앞 바로 벼름박에 부딪치고서 깨졌고 이깨진 재털이 파편이 떨어지는 동시에
저는 재털이 파편을 밟아 그자리에 주저 앉았고 오른발 새끼와 엄지 발가락 두개에 파편이 박혔습니다
너무 격분한 아버지는 이 상황을 모르셨고 주저 앉아있는 저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이놈의 감히 어디라고 싸가지 없이 담배를 잘라 하며 휘둥그레 눈을 부라리며 말을 높이셨고
잘못했습니다 를 연거푸 말하고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저를 보고는
그제서야 제발을 보셨슴에도 워낙 화가 나있는 상태라 호흡이 거칠었뿐 아무말 없으셨어요
한숨을 돌리신 아버님은 그재서야 응급치료를 해 주시면서
너 오늘 이상황이 아니었스면 지게 작대기로 두들겨도 시원찮았다고 말씀 하시면서
아버지가
왜
이렇게 담배를 많이 피는지 니들이 알기나 하냐고 이놈들아
난 술 담배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 이놈아
아버지는 속이 문드러져 어디다 하소연 할때도 없는 사람이야
내가 짊어질 빛이 얼만줄이나 알고 이러느냐며
그간 집안사를 이야기 하시는대 내용은 할아버지가 도박으로 탕진을 하고
그 도박빛을 감당못해 맞아 돌아가셨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너무도 답답하고 힘이들고
사는 맛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때부터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 연명하시면서 업친대 덮친다고 시장을 다녀 오시다
경운기 뺑소니 사고로 허리까지 다치시는 설상가상에 놓이게 되고
집까지 수해로 주저앉아 졸지에 모든걸 잃었고 간신히 도움을 얻어
집한칸 마련하여 산것도 다 빛이라는 말씀에 저는 그저 당시에 어렸고
어떡해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지요 그저그런가 보다 생각만 했지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각종 품앗이에 허드렛일을 하시는 어머님고하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를 위해
얼머나 고생을 하시는가를 서서히 깨닫게 되고
서서히 커가는 저자신과 함께 아버지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당시 4천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빛들이 아버지의 숨통을 조이게 하였고
마지못해 죽음을 택하시기까지 얼마나 많이 힘드셨을까
어머니의 고통은 말할것도 없었을것이며 할머니또한 이러한 상황을 무던히 받아 들이시고
우리 손주들 먹여 살리겠다고
이제것 남의 삭도지 일에 꼭두새벽 몸을 일으키시고 품앗이로 우리 학비를 대셨고 어떡해든 남들과 함께
교육 시키고자 밤낮이 없던 할머니 어머니 ~~
아버지가 운명을 할때 비로서 알았습니다
치료비 조차 살아있는 동안 당싱이 다 쓸까봐 농사일도 짖지 못할정도의 허리 악화로 더이상 가족에게
누를 끼치느니 차라리 하루빨리 죽어야 우리가족이 산다는 생각하에 스스로가 삶을 포기하셨던 거지요
저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이를 악물고 새벽 4시면 일어나 할머니 일과 어머님 일을 가리지 않고 도왔습니다
동생들은 이일에 함께 동참을 하였고
그래도 식구가 먹고 사는대는 문재는 없었습니다
친구들 공부할때 죽어라 일했고 친구들 소풍에 수학여행 간다할때 밭을 일구고 똥장군으로 밭에 거름을 내고
남의집 논으로 품앗이며 탈곡 담배잎 따기 모내기 등등 악착같이 모았습니다
옷은 얻어 입었고 돈은 쓸생각도 하지않았고 오로지 살아보겠다는 일념하나로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이렇게 군대 가기전까지 모아 입대전 이돈을 어머니께 드리고 병역을 마치는 내내 까지 급여를 모아
이돈마저 어머님께 드리고
동생또한 열심히 운동을해 태극 마크가지 달며 집안이 일어서기 시작했고 빛도 다 청산하고
5식구가 2500만원 전세에 살면서 한번도 용기를 잃은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지금의 아이들이 있기까지의 저의삶은
다른 50대 이상의 어르신이 겪었던 보릿고개를 저는 경험을 했고
일주일을 쌀 없이 옥수수 고구마 감자로 생활 하기까지 했습니다 휴~~
제나이 36 아무도 믿질 않지요 아니 이렇게 까지라고 생각을 하지 않지만
제말 한마디 한마디 듣고 나면 저를 충분히 이해해 주시더군요
집안 과거사를 어린 저에게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를 생각하면
너무도 마음이 아푸고 쓰리내요 이런 저에게 모든걸 말씀하시고 죽음이라는 결단으로
저스스로의 삶을 정할수 있게 만들어 주신 아버님의 용기있는 말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겁니다 살아가면서 저의목표가 잡혔지요 우선 빛부터 갚고 그다음은 내집마련
이렇게 마음먹고 살아오기를 지금것 하루하루 열심히 살게된 삶의 및천이자 자양분이 되었던겁니다
이때 아무 말없이 그저 모든걸 포기하고 돌아 가셨더라면 저또한 많은 방황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 사셨던 아버지의 썩은 속내를 모른채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말이지요
아마 지금의 저와 가족은 없었겠지요
생각조차 하기 싫어지내요
장남인 어린저를 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이해를 합니다
아버지의 역활과 자리의 중요성을 어린 저에게 술과 담배로 새월을 허비했다 하시는
동네 어르신들은 말씀 하시지만
저는 다릅니다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속에서도 그고통을 치료할 치료비 감당을 걱정하시며
술로 고통을 잊으셨다는걸 저는 압니다 할수없이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제게주신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최고의 선물은
척박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 하셨던 아버지의 굳은 마음을 말이지요
하지만 결국엔 생마저 놓아야했던 아버지의 결단력이 저는 가장큰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저는 세상을 미리 바라봤고 제가 가야할 길을 미리알았기에
세상과 싸울수 있었고 지지 않을수 있었던것 같아요
오늘따라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내요
아버지로 인해 저는 지금의 제가 있어요 부디 평안히 계시구요
우리 삼형재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손을 꼬옥 부여잡으시고
애비 없는동안 집안 잘 이끌어 주어 고마웠다는 말을 뒤로하고
눈을 감으시는대 할머니의 이 모습에서도 저는 또한번 삶을 부여잡는 계기가 되었어요
어머니 또한 잘 모실께요 평안히 계세요
아들이
제아내 또한얼마나 소중한 동반자 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배려와 양보 인내와 사랑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소중한 선물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언잰가는 ~노래 신청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