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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선물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어를 전공하는 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학과 특성상 저희 학교에는 3학년 때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중국에 갈지 말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2학년 말에 저는 무척이나 고민이 됐습니다. 앞으로 전공을 살려 취업할 것을 생각하면 중국어 능력 향상과 중국 문화 체험을 위해 연수를 가는 게 당연했지만, 당시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의 사정이 좋지 않아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비를 제외하고도 중국에서 1년 가까이 지낼 동안 최소한 500만원의 생활비는 필요하다고, 또 이중수수료 문제로 1년치 생활비를 한 번에 가져가서 중국은행에 저금해놓고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선배 말에, 당장 무슨 수로 그 큰 돈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과 친구들 거의 대부분이 중국에 가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나 혼자만 돈 때문에 연수를 포기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너무 서글퍼졌습니다. 그래서 한참의 고민 끝에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얘기를 꺼냈습니다.


“엄마, 나 내년에 중국 연수 가야 돼.”


“응, 알고 있어. 중국어관데 당연히 중국 가야지.”


“근데, 생활비가 좀 많이 필요하대.”


“많이? 얼마나?”


“선배들이 최소한 500만원은 있어야 된다고 하던데..”


“…500만원?…” 


제 입에서 500만원이라는 금액이 나오자 엄마의 얼굴이 한순간 어두워졌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곧바로 표정을 고치며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알았어. 엄마가 한 번 구해볼게. 걱정하지 마.”


“진짜? 엄마가 구할 수 있어?”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넌 가서 공부 열심히 할 생각만 해.”


저는 엄마의 자신 있는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 다음날 저는 과사무실에 가서 연수 동의서에 싸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중국에 가져갈 짐 목록을 작성하며 해외에서 지켜야할 유의사항을 찾아보는 등 어학 연수 준비로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몇 달 뒤 출국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엄마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이거 400만원인데, 가서 생활비로 써. 500만원 필요하댔는데, 엄마가 이만큼밖에 준비 못해서 미안해.”


엄마는 저에게 몹시 미안한 듯 말씀하셨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존심 강한 엄마가 저 때문에 돈을 빌리면서 얼마나 굽신거렸을지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큰 돈이라 분명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여러 사람에게 손을 벌려 마련하셨을 텐데, 저는 그동안 중국 갈 기쁨에 겨워 엄마의 고생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눈물 겹도록 고마우면서도 이 철부지 딸은 최소 생활비가 500만원인데, 400만원을 가지고 갔다가 먼 이국땅에서 돈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셨는지, 엄마는 출국하기 전날 저에게 봉투 하나를 더 건네주셨습니다.


“이거 50만원 더 환전한 거야. 500만원 채워주고 싶었는데, 결국 이것밖에 못해주네.  엄마가 너 간 뒤에 송금이라도 해줄 테니까, 밥 굶지 말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지내. 알았지?”


가족을 두고 일 년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뜩이나 심란해진 제 마음에 엄마는 결국 눈물의 불씨를 당기고 말았습니다.


엄마 앞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자, 엄마는 저를 조용히 다독이셨습니다.


“울긴 왜 울어? 아주 떠나는 것도 아닌데... 가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밥 잘 챙겨먹고 열심히 공부해. 엄마는 그것밖에 바랄 게 없어.”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계속 눈물만 흘리며 결국 밤을 새우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엄마와 가족들을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국에 가서는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하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중국어 인증 시험인 HSK에서 친구들보다 더 높은 급수를 인정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다니던 직장을 잠시 그만 두고, 제가 어려서부터 꿈꿔온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시금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만에 공부를 시작하려니 생각보다 힘이 들지만, 그 때마다 그 날 엄마가 건네주셨던 50만원을 떠올리며 꿋꿋이 견뎌내고 있는 중입니다. 


전업주부라 사회 경험이 전혀 없으신 엄마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다니셨을 생각을 하면, 한눈 팔지 말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꿈을 위해 도전하는 딸을 바라보며, 엄마는 오늘도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네요. 빨리 꿈을 이루어 엄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직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 가신 부모님과 함께 중국 여행도 같이 가서, 힘들었지만 제 꿈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그 곳을, 웃으면서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엄마, 늦었지만 이제야 말할게요. 엄마의 사랑이 담긴 소중한 선물 고맙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