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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에게 서른은 꿈이다....이룰 수 있는 꿈.

 

“뭐야? 지금 제정신이야?”

내 나이 서른. 우리 집에 한바탕 비바람이 몰아쳤다.

우리 언니는 귀청이 떨리도록 큰 소리로 나를 한껏 나무랐다.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고만 계셨다.

서른의 나는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돌연 그만두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던 그 때, 친구를 기다리다가 살을 에는 추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저 따뜻해 보여 들어갔던 그 학원 상담실에서

나는 내 인생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렸다.



이미 대학교를 두 개나 다녀 7년간의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이제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시기에

다시 원인 모를 역마살 같은 나의 욕심이 도져

온 가족이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우리 언니는 한껏 나를 나무라더니 휭~ 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꽤나 답답했나보다.



엄마 아빠는 이제 어쩔 것이냐며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셨지만

어느새 늙어버린 부모님의 주름진 눈 뒤쪽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과,, 조금은 원망어린 눈빛,,,

그리고 딸이라서 차마 내뱉을 수 없는 아픈 말들을 되삼키는 복잡한 눈빛들이 섞여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애인도 없이 그저 공부하느라 흘려보낸 그 많은 세월들이

나는 그다지 사무치지 않았다.

서른의 나이에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두려움.. 그런 것도 없었다.

왜일까..?

나는 현실이 불만족스럽지도 않았고, 도피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배부른 고민? 그런 것도 아니었다.

365일 등 따숩고 배불리 먹을 만큼 여유 있는 집도 아니었으니...

단지, 그저,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에 대한 한 없는 죄송함과

불효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와 한심함...

그저 그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모진 말들과 눈빛을 견디고

서른의 늦은 나이에 입시 학원에 들어갔다.

많은 시간을 대학에서 공부했지만

나는 입시학원에서 배우는 고등학교 교과서가 참 좋았다.

수학책이 좋았고, 국어책이 좋았다.

공책에 반듯반듯 써나가는 필기도 좋았고, 시험을 앞두고 있는 그 긴장감도 좋았다.

상당히 이기적이고 철없는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염치 불문하고  그렇게 서른의 나이에 수능을 준비했다.



수능 공부를 하는 시간이 쉽지는 않았다.

대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너무 달랐고,, 고등학교 공부를 한지는 10년이 넘었다.

주위에는 재수생이지만 20살의 젊음으로 빛나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열정적인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감 넘치는 성인들이었다.

콩나물 시루 같은 그 학원 교실에 앉아 있으면서 끝없는 위화감도 느꼈고,

후회도 밀려왔다.


요즘 온라인 상에서 유행하는 “ 여긴 어디? 난 누구? ”를 온 몸으로

체감하며 자괴감도 느꼈다가,

어느 순간은 높은 점수의 시험지를 보며 어린아이마냥 기뼈하며 희망을 엿보곤 했다. 

젊고 빛나는 그 아이들과 나는 같은 재수생의 입장인데

나만 빛바랜 낡은 일기장 같아 가면이라도 쓰고 싶었던 순간이 있는가 하면

저 앞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토끼가 있는 것 같아

열심히 달리는 거북이가 되고 싶은 순간이 있기도 했다. 



입시 학원의 학원비는 서른의 백수인 나에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20살의 빛나는 그 아이들과 달리 나는 내 행동에 책임이 있었고, 염치라는 것이 있었다.

해서 나는 공부와 과외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과외를 해서 학원비를 충당했다.

나이가 서른 줄에 들어서인지, 원래 살집이 있던 내 몸 때문인지

체력의 한계가 나를 좌절케 했다.

직장 생활과는 또 다른 고3 수험생의 매일 같은 일상이 나를 옥죄여 오기도 했고

과외를 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직장인의 애환도 동시에 느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당시의 지친 서른의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고 의지하게 해 주었던 사람은

부모님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바로 귀청을 찢을 듯한 외침으로 한껏 나를 나무라던 우리 언니였다.



언니는 내가 입시 학원을 다니던 때에 새벽 6시에 일어나 8개월을

하루도 빼지 않고 도시락을 싸주었다.

항상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꼭꼭 넣어 도시락을 싸주고.

미리 한 밥은 맛이 없다며 새벽에 꼭 새 밥을 해서 넣어 주었다.

가끔은 따뜻한 밥을 먹어야 한다며 밤에 학원으로

야식을 만들어 가져다 주기도 했다.

눈물 젖은 도시락이 이런 것일까?



언제나 티격태격 항상 다투고

한심하다, 철없다 늘 나를 나무라기만 하던 언니인데... ..

나랑 살기 지겹다며 결혼하면 인연 끊을꺼라고 항상 소리치던 언니인데....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으면서 어른인척 한다며 흉만 보던 동생인데...

언니가 나간다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약만 올리던 동생인데....

좋은 것이 생기면 욕심부릴 줄만 알던 동생인데...



언니는 ........언니다.

다투면서 감싸줄 줄 알고, 툴툴대면서 챙겨줄 줄 알고,

윽박지르면서 칭찬할 줄 알고, 귀찮아하면서 사랑해줄 줄 아는 우리 언니,

언니 덕분에 나는 다시 내 인생의 마지막 대학교를 갔다.



서른의 나는....

펑펑 내리던 눈을 피하듯 현실을 피해 학원으로 들어갔지만

충동적으로 들어선 학원에서 충동적으로 내 인생을 바꾸었지만

한심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남들이 아니오! 하는 길을 혼자서 예! 하며 걸어갔지만

부모님과 언니의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마음을 과분히도 받았던 해였다.



서른 즈음에,, ...

나는 그렇게 새 길을 걸어 나갔고

지금 나는 교단에 서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장래희망이 바뀌는 아이들의 꿈을

마냥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의 꿈을 변덕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고

한 순간의 꿈도 아이가 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소중히 대할 줄 아는 그런 교사가 되었다.  



그 때의 꿈도 소중하고. 내일의 꿈도 소중하다.

오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오늘 이루고.

내일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내일도 꿈을 이루면 된다.

오늘 못 이룬 꿈에 좌절하지 말고, 내일 다시 꿈을 꾸면 된다.

지금 꿈을 꾸지 못하더라도

꿈을 꾸고 싶은 그 순간이 왔을 때 꿈꾸고, 이루고, 성장하면 된다.



서른의 경험이 나를 키웠고.

그 경험으로 나는 우리 아이들을 키운다.


나에게 서른은... 꿈이다.

이룰 수 있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