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즐2 편지쇼
자식은 부모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갑니다.
사랑하는 엄마…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학교에서 단체로 쓰던 편지 이후로 처음 편지를 쓰는 것 같아.
매일 얼굴 보는 가족끼리 편지가 왠 말인가 낯간지럽기도 하고…
그런데 그냥 요며칠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어.
12월말정도부터였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냉장고에서 덜덜덜~ 하는 소리가 나서 잠을 못자겠다고 짜증을 많이 부렸었지. 아마 그때부터 냉장고는 이미 “난 이제 그만 살고 싶어요 “하는 절규를 했던 것 같아.
그러던 것이 1월 달 설이 지나고 그 많은 음식을 더 담기는 힘들었는지, 작동을 안하기 시작했고.
며칠 동안 엄마는 식탁에서 냉동실 한 칸이 작동이 안 된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못들은 척 밥만 먹었어. 우리한테 사달하는 것 같았고, 왠지 뭐라고 대꾸를 하면 당장 내가 냉장고를 사줘야 할 것 같았거든.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이 무겁고 사드려야겠다라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어.
그러던 며칠 후,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냉동실에 있어야 할 음식들이 다 식탁 위에 나와있고 엄마는 연신 녹아 흘러내린 물을 닦고 있을 때 직감했지.
-아, 드디어 냉장고를 사줘야 할 때가 되었구나.
사실 엄마나이 부모님들이 자식 키우느라 노후대책도 그렇고 당장 쓸 돈도 넉넉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사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리 속에서는 연신 계산기를 두드리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지.
-이번 달 카드를 이만큼 썼으니 다음달에 이정도 빼고, 핸드폰은 얼마고…음 그럼 이정도 돈이 남으니 동생들과 나누면…대략 얼마가 나오네.
순간, 머릿속에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울 때 이렇게 계산을 했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어.
-이번달 분유값은 얼마, 이번달 기저귀는 얼마, 분유값이 초과 되었네 분유 좀 덜 먹이고. 기저귀 한번 재활용.
부모님이 이러면서 키우진 않았을텐데.
왜 부모가 자식한테 해주는 건 당연한 것이고 자식은 계산을 하는 걸까?
순간적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에 너무 죄송스럽더라고.
이제까지 살면서 나만한 딸이 어디 있어~! 이 정도면 최고지~! 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면이 많았는데 나 자신한테 좀 부끄러웠어.
근데 엄마, 내가 자식으로 살아보니까 자식은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이 해주신 것 반의 반, 아니 1/100도 다 못하는 것 같아.
아직 내가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어서 부모의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자식은 부모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는 것 새삼 느끼는 요즘이야.
동생들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드린 돈에 보태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사고 연신 우리에게 고맙다 하시고, 동네 사람들에게 딸들이 냉장고 사줬다며 딸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엄마를 보면서 온전히 우리가 다 해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핑계를 대자면 박봉에 시달려가면서 돈 모으려니 조금은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
엄마, 이제 가전제품 바꿀 꺼는 김치냉장고 하나 남았지?
그건 결혼하기 전에 온전히 내가 사주고 갈게.
그리고 요즘 간간히 뭐 사고 싶다고 하는 거, 사달라는 거 맞지?ㅋㅋㅋ
비싼 거 아니니까 다음달에 연말정산 나오면 사줄게.
근데 나 연말정산 뱉어내야 하는 거면 어떡하지?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