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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석오 이동녕 선생의 길을 가다(1-상하이)/리포트

◀앵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낸 천안 출신, 석오 이동녕

선생은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특히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이동녕 선생 서훈 1등급

상향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과 100만명

서명운동이 추진중인데요.



대전MBC는 오늘과 내일 이동녕 선생 등

우리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발자취들을 재조명하는 뉴스를 마련했습니다.



김태욱 기자입니다.

◀리포트▶ 



백 년 전, 3.1 운동은 일제의 부당함과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각계 독립인사들은 체계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정부조직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았고, 국내·외에

한성정부와 대한국민의회, 상하이 임시정부가

각각 세워졌습니다.



[김태욱 기자]
"천안 출신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은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에 취임해 3개로 나눠져 있던 임시정부 통합을 주도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과 국무총리 등 중책을 맡은 이동녕 선생은 1932년, 예산 출신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도시락 폭탄 의거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의거 이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

훙커우공원은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공원 한쪽에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마련돼

독립정신을 기리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을영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3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젊은 청년 한 명이 해냈다는 것으로 장계석이 김구를 만나서 재정적인 임시정부의 지원을 허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의미가 있습니다)"



[김태욱 기자]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 이후

일본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상하이 임시정부는 충칭 임시정부까지 총 7차례나 거처를 옮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고,

교통과 군사, 외교와 교육, 그리고 재정과

사법 등 모든 분야에 걸친 광복정책을

전개했으며 지금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근간을 이뤘습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이 일제 치하의 어둠을

독립으로 밝히자는 뜻으로 남긴 '광명'이라는 유묵은 아직까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한편에 그대로 내걸려 불굴의 독립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태욱입니다.
김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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