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부가 서훈 신청 조건을 완화하면서
충남에서도 숨은 독립운동가 346명의
공적이 110여 년 만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장만이 서훈 추천을 할
수 있는 맹점 등으로 아직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형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의 을사늑약에 항거해 1906년 천여 명의
유생과 농민 등이 봉기한 2차 홍주의병.
의병들은 홍주성을 함락시키며 열흘간이나
치열하게 싸웠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일본
정예군에 패하며 9백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이유현 / 홍주성역사관 학예연구사
"당시 일본군은 러일전쟁 때 러시아 군과 계속 싸웠던 실전경험이 풍부한 부대였기 때문에
의병과의 전투에서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4시간
만에 전투를 끝내는.."
당시 전투를 기록한 고종실록입니다.
남규진 의병장이 일본군에 둘러싸인
민종식 총수를 돕기위해 홍주성에 진입해
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남규진 의병장은 그간 서훈을 받지
못 하다가 정부의 서훈 신청 조건 완화로
115년 만인 올해 공적을 인정받게 됐습니다.
정을경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직계자손이 신청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분명히 아버님이나 할아버님의 독립운동
내용을 들었는데 본인은 전공자가 아니라서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어려움을
토로했었어요."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전국 최초로 충남 예산과 부여, 서천 등 3개
군의 숨은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서 모두
346명을 찾아냈습니다.
3·1 운동 당시 보안법을 위반한 수형자 등
일제강점기 범죄와 수형기록까지 꼼꼼히
조사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지자체장만 서훈을 신청할 수 있어
346명 중 제적등본이 없는 200명은 서훈을
추천할 수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박병희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원장
"범죄자로 취급을 하다보니까 외지로
남몰래 떠나서 사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숨은 독립운동가 발굴이 비해
서훈 추천 인물이 적은데 앞으로 추적
작업을 더 해서.."
연구원은 충남 전 지역으로 발굴 사업을
확대하고, 광역 단체장이나 국가가 서훈을
신청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조형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