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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서산개척단 "국가의 인권 침해" 후속/데스크

◀앵커▶

60여 년 전, 박정희 정권은

충남 서산 일대의 갯벌을 농지로 개간하는

'서산 개척단' 사업을 벌였습니다.



2천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수용돼 강제 노동에 시달렸는데요.



최근 국가의 인권 침해 사례로 인정받았는데,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등

후속조치는 기약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승섭 기자입니다.

◀리포트▶



1961년, 박정희 정부는 국토 개발 사업을

한다며, 충남 서산시 인지면의 간척지에

청년과 부녀자를 강제로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온 청년 1천7백 명의

눈앞에는 생지옥이 펼쳐졌습니다.



끝없는 강제 노역과 폭행이 자행됐고,

남몰래 죽어 나간 사람도 백 명이 넘습니다.



 이정남 서산개척단 피해자

"배고프기도 하고. 쓰레기 같은 것 주워 먹은

사람이 있고, 그러다가 아파서 죽는 사람이 있고. 작업하다가 땅이 무너져서 깔려 죽는

사람이 있고."



단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강제로 합동결혼식도 올렸습니다.



 대한뉴스(1963. 10. 12)

의지할 곳 없었던 부랑 청년들과 윤락의 함정에서 헤매던 불우한 여성들로서, 자립·자활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곳 정부가 마련한 보금자리를 찾아…



개간한 땅을 주겠다는 말도 모두 거짓.



피해자들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라에 임대료를 내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서산개척단 사건을 국가가 자행한 집단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피해자에게 사과는 물론, 적절한 보상과

특별법 제정도 권고했습니다."



5공 당시 삼청교육대에 앞서,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를 정부 기관이 인정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



 정영철 서산개척단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국가한테 사기당한 놈들, 세상에 우리 같이

억울한 놈들이 어딨냐고. 국가가 우리들을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빨리 (보상을)

해줘야 해."



진실화해위원회는 6·25 전쟁 당시인

1950년 9월과 10월, 홍성에서 적대 세력에 의해

민간인 19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도 조사했고,

정부에 피해 구제와 희생자 위령 사업의

시행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종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홍성유족회

"그 사람들(유족)이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국가에서 나서야 된다고 보는 것이죠.

국회에서 나서서 법을 개정을 해서

한 명이라도 죽기 전에"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관련 규정대로

진실화해위원회 2기의 활동 기간이 끝나는

2년 뒤에나 권고 사항을 한꺼번에 검토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가 인권 침해를 인정해 놓고도

피해자 배·보상 등 후속 조치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MBC 뉴스 이승섭입니다.

문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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