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축하
결혼 29주년을 맞습니다
그해 가을 결혼한 우리가 둥지를 튼 곳은 반 지하의 셋방이었습니다.
지독스레 가난하다보니 그같이 누추한 신혼살림은 당연한 것이었지요.
여하튼 곧이어 겨울이 되자 혹독한 추위는 거드모리로 몰려왔습니다.
그리곤 마구 횡포를 부렸는데 우선 방안에 있는
자리끼까지도 동태처럼 꽁꽁 얼리기가 일쑤였지요.
이듬해 아들을 낳은 뒤의 혹한은 더욱 괴팍스러운
얼추 개차반의 행실까지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한술 더 떠 방안에 넌 아들의 기저귀조차 꽝꽝 얼렸으니 말입니다.
그같이 범강장달이와도 같은 매서운 추위였으되
우린 사랑으로 그러한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모두 가난한 집안의 아들과 딸로써 만나 시작한 부부생활이었기에
이후로도 삶의 에움길은 가히 간난신고의 험산준령에 다름 아니었지요.
언제나 그렇게 바특하기만 한 나날은 두 아이에게
남들처럼 학원 한 번을 맘 놓고 보낼 수조차 없게 만들었고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질곡과 함정이었기에
저의 세상을 향한 뜸베질은 어쩌면 수십 년을 이어온 강행군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랬음에도 여전히 냉갈령스럽기 그지없던
세상의 풍파는 늘 그렇게 딴죽을 치기 일쑤였지요.
어쨌든 고진감래는 반드시 있음, 그 하나만큼은 믿기로 했습니다.
제 아무리 뻗센 풍상일지라도 결국엔 종착역에 닿을 거라고 말이죠.
비록 여전히 빈한했을망정 새벽동자의 부지런함과
숫눈 같은 성정, 그리고 위선이 다분하긴 하되
고답적인 정신세계만큼은 견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처럼 강동거리며 아내와 살아온 세월이
이제 오는 10월 12일이면 어느덧 결혼 29주년을 맞습니다.
그야말로 헉헉대며 가르친 두 아이는 올 초에 모두 대학을 마쳤습니다.
아들은 이어 취업에도 성공했고 딸은
내년부터의 대학원 진학을 위해 오늘도 ‘열공’ 중입니다.
그렇게나 감당하기에도 버거웠던 난당의 나날은 그러니까
어쩌면 올해로써 종지부를 서서히 찍는 임계점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에 ‘그 겨울의 찻집’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을 시작으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라고 매듭을 짓고 있지요.
그렇다면 이를 비유한 저의 제가 생각하는 아내에 대한 감흥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고난 속으로 걸어왔어요 변화무쌍의 그 시절...)’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에 와서의 어떤 매듭은 이렇게 낙착이 되는 듯도 싶네요.
‘(여보, 그간 고생 많았소!) 이제는 웃자 눈물은 그만 그대 나의 사랑아!’라고요.
우리 부부의 결혼 29주년은 그래서 축하해 주셔도 무방하겠지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