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사연
내가 아이키우는 법과 올케가 아이키우는 법
며칠 전에 친정 조카딸이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친정 올케는 딸 하나를 키우고 있다보니 아이를 키움에 있어 각별한 신경을 씁니다.
그러다 보니 딸이 아프면 일단 나에게 먼저 물어보는데, 나는 아이들을 먼저 키워봤으니 아무래도 올케보단 아이의 병을 위로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가 생각납니다.
우리 아이들은 연년생이어서 한 번 아프면 한 아이가 아프고 나으면 또 다른 아이가 따라서 같은 병을 앓게 되어 여간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 제일은 의사 장티부스였습니다.
계속 되는 설사로 아이들은 탈진이 되어 가고, 약도 먹으면 바로 토하니 오히려 약 먹이는 것이 해로울 지경이라서 아침 저녁으로 주사로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집은 작은 산동네라서 한 번씩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여가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아이들이 탈수로 위험할 수도 있으니 영양제라도 맞자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주사라면 병원 근처만 가도 뒤로 넘어져 주사 맞치기고 힘이 들으니 가능하지 않아서 별 생각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무슨 방법이라도 찾아보자고 하면서 우리 사는 집으로 오시도록 해서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니까 삼신 할머니에게 빌어보자고 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배운 과학적 지식은 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시어머니도 아이들을 보고는 며느리가 하지고 하니까 정말 삼신 할머니에게 빈다고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다시 해서 아이들 머리맡에 놓고 빌었습니다.
그랬더니 주사 덕분인지 정성 덕분인지 아이들이 차츰 차도를 보여서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나는 이런 비과학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지만 우리 올케는 나랑 다릅니다.
집에 가정용 체온계를 비치해서 수시로 아이가 열이 있는지 확인하여 병원에 뛰어갑니다.
이 방법이 과학적입니다.
그런데도 비과학적인 시누이가 위로가 되는지 아이만 아프면 전화합니다.
내가 시어머니에게 정성을 들여 달라고 조르던 엄마의 마음이랑 같은가 봅니다.
아직도 조카딸은 다 크려면 아직 먼 다섯 살이니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위로를 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