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축하
참담의 닻
작년 12월 23일, 대전 시민 아카데미가 주최한 고 리영희 선생 추모 강연회에 간 적이 있다. 여기서 강의를 하신 남재영 대전 빈들교회 목사는 강의 뒤 질의응답에서 청중이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요즘의 언론(관)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제가 보기론 얼추 다 썩었다고 봅니다. 기득권층에 안주하고, 때론 정권과 자본에 굴복한 그런." ".......!!"
순간 나는 동의의 표시로써 열렬한 박수를 치고픈 충동까지를 불끈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평소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은 시종여일(始終如一) 변화가 없어야만 비로소 진국(거짓이 없이 참된 것,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 터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엔 나도 참 좋아했던 기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그러나 시종여일의 미학(美學)을 배신하고 결국 권력의 힘에 ‘빌붙었다’.
- 한동안은 많은 사람들의 리더가 됐던 김은혜. 그녀의 펜 카페에 들어가 봤다. 2008년 2월 12일 청와대 부대변으로 결정되고 엠비씨를 사퇴한 후 2008년 2월 17일. “처음이자 마지막 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후 그 뒤부턴 아무런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B카페 공지 중에 눈길을 끄는 공지가 보인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욕설은 삼가해 주세요.' 그토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시대의 리더였던 그녀는 그렇게 변해갔고 그녀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2008년 2월 17일 이후 그렇게 그녀를 잊었다.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 김은혜가 쓴 저 책. 카페엔 이런 말도 보인다. 이젠 그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겠습니다. 2008년 2월 17일 이후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의 LOVE 김은혜 카페-
이 글은 기자 출신 김은혜 현 KT 전무의 변절(變節)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담아 모 누리꾼이 쓴 글을 인용한 것이다. 어제(1월 11일) MBC-TV <PD수첩>에선 자사(自社)의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의 대변인을 거쳐 KT전무로까지 ‘수직상승’한 현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낙하산 인사를 ‘용기 있게’ 꾸짖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평생직장으로 알고 늘 근면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 난데없이 낙하산으로, 그것도 불과 30대의 사람이 전무로 취임한다는 건 솔직히 납득도, 허용도 할 수 없는 반발의 방점을 찍는 화두임은 자명한 노릇이다. (1971년생인 김은혜는 작년에 KT 전무로 취임할 당시 언론의 ‘분류 나이’로써 39세였다.)
개인적으로 많은 기자를 알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잘못 된 현실에 분개하고 총 대신 펜으로써 그릇되고 경도된 사회를 바로 세우고자 지금 이 시간에도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내일 백 냥보다 당장 쉰 냥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차후의 더 큰 이익보다 당장의 작은 이익이 낫다는 말의 표현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기자가 권력에 빌붙으면 얼마나 초라하고 또한 추락하는지를 국민들은 지금 똑똑히 잘 보고 있다.
권력(의 남용)을 감시해야 할 기자가 도리어 그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고 그도 부족하여 자신이 기자 시절엔 그같은 뉴스엔 통분의 멘트까지를 날렸음직한 화두였거늘 하지만 이젠 한 술 더 떠 자기 자신이 낙하산 인사의 상징인물로까지 각인되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기자와 권력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에 참담의 닻을 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