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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두군데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고향이 두 군데인 29살 아리따운 처녀 김미희입니다.

이곳에 사연을 올리는건 솔로 세자매 크리스마스 여행기 사연을 올린 이후로 두번째이네요.

그 때 남자친구가 있는 넷째언니를 떼어놓고 갔다고 냉정하다고 하셨었는데.. ㅎㅎㅎ

전 주민번호 뒤 7자리가 24로 시작합니다. 태어난곳은 대전이란 말이죠.

그런데 갓난아기 때 바로 옆 동네인 옥천으로 이사를 가 19년을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옥천에서 다녔죠.

동네가 작고 학교도 몇개 없어서 무려 8명이나 되는 저희 가족을 개개인 모두 다 아는 친구는 당연하고 하물며 초,중,고를 모두 같이 다닌 친구도 있습니다.

부유하지 못했던 탓에 전세를 긍긍하며 이사를 자주 다녔었는데 그 중에서도 옥천 저수지 밑에 살았을 때가 가장 생각이 납니다.

추운것도 정말 말도 못하게 추웠지만 더욱 절망적이었던 것은!!! 화장실이 집안이 아닌 마당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땐 또 왜그렇게 자다가 화장실이 자주 가고 싶었었는지...

자고 있는 언니를 억지로 깨워 손전등을 들고 추위에 덜덜덜 떨며 가기가 일쑤였죠.

그리고 저와 또 저와 쌍둥이인 넷째언니가 골목대장이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다 불러모아 기합을 주고 엄마 아빠 놀이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또 동네에 있던 작은 포도밭에서 비를 쫄딱 맞아가며 서리를 했던 기억도 나고..

참 추억이 많은 동네입니다.

이사를 다니고 다니다 마지막에 정착한 곳은 매화리라는 동네였습니다.

마당도 넓고 전망이 좋아 제 방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면 산과 산 사이로 해가 뜨는 것도 볼수가 있었고 옆으론 길이 쭈욱 뻗어 있습니다.

더구나 이곳은.. 저희 부모님이 몇 십년을 저희 육남매 키워가며 힘들게 힘들게 모으신 돈으로 처음 마련한 집이었기 때문에 더욱 정감이 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모두 학생이었고.. 교육상의 문제로 대전으로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죠.

19년 동안 많은 추억을 안겨준 옥천이 꿈에서도 나오곤 했었습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도 한번 가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흰 대학교를 대전에서 다니고 또 직장을 다니며 대전에서 8년을 살았습니다.

워낙 돌아다니는걸 좋아해서 대전은 제 손바닥 안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재작년인 2009년에 형편상의 문제도 있고 부모님의 건강상 문제도 있고 해서 옥천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꿈에도 나오던 매화리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겁니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저희 둘째언니가 차가 있어, 엄마, 둘째언니, 제가 차로 같이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드디어 우리 집에 산다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이사를 더이상 다니지 않아도 되고, 나무 보일러를 떼어서 기름값을 절약하고, 전기도 농업용이라 전기세도 절약하고 따로 관리비를 내지 않아도 되어서 경제적으로 얼마나 절약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말 많이 발전을 했더라구요. Take-out 커피숍도 많이 생기고, 공설운동장도 많이 좋아졌고..

아무튼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저의 유년시절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옥천!!

정지용 시인을 추모하는 지용제중봉충렬제 등 행사도 많고 맛 좋고 향기도 좋은 포도도 유명한 우리 옥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니까 은하언니도 언제 한번 놀러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