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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연

장학금, 그리고 가난한 작가


어제 오전, 근무 중에 서울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문자메시지는 몰라도 직접 전화로, 더욱이 집 전화가 아닌 나의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기실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딸이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주저 없이 전화를 받았다. “응, 우리 딸 뭔 일 있니?” 딸은 2학기에 장학금 신청을 하려는데 그에 필요한 서류의 준비를 부탁했다. “그럼 당연히 아빠가 해야지! 필요한 서류의 구체적 내용은 문자로 보내거라.”

 

잠시 후 딸이 보내준 서울대학교 대학원 장학금 신청 서류의 1순위인 <2010년도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를 팩스로 받고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ARS 전화 1577-1000번을 눌렀다. 담당 여직원은 그러나 “귀하께서는 2010년 1월까지만 납부하셨고 2월부터는 아드님이 줄곧 납부하고 있는 관계로...” 아들이 직접 전화를 하여 요청하지 않으면 불가하다고 했다.

 

그랬다. 효자 아들은 작년에 취업한 즉시로 “이제부터 건강보험료는 제가 내겠습니다.”며 현재도 나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있는 터였다. 아들에게 문자를 통해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서둘러 업무를 마감하고 오후 3시에 사무실을 나왔다.

 

대전세무서에 도착하여 <2010년도 소득금액 증명원>을 떼자니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러 온 이들로 말미암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떡 본 김에 ... “저도 신고하러 왔는데요.” 담당자는 ‘국세청 홈택스 서비스’의 전산망에서 나의 ID와 비밀번호를 물어 접속하더니 일사천리로 처리해 주었다.

 

나의 소득세 신고 관련 업종코드 번호는 940100. 즉, ‘작가’라고 하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가난한 작가이고 보니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는 되레 환급대상자로 분류되었다. “6월 말쯤에 선생님의 통장으로 입금될 겁니다.” ‘올해는 반드시 소설을 써서 신경숙을 능가하는 대박을 칠 거야!’

 

세무서를 나와 택시를 타고 이번엔 동사무소로 갔다. 주민등록 등본에 이어 <2010년도 세목별 과세(납세) 증명서>의 발급을 요청했다. 여전히 쥐뿔도 없이 사는 형국인지라 그 증명서에는 역시나 “대전광역시 동구 관내 2010년~2010년 재산세. 재산세(건축물), 재산세(항공기), 과세(납세) 사실 없음”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도출되었다.

 

그 증명원을 받아들자 새삼 그렇게 또 ‘나는 정말 가난하구나...!!’를 절감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선 <전.월세 계약서>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이제 서류 준비는 다 되었다. 그 즈음 사무실의 선배님은 아들이 요청한 건보공단의 서류가 팩스로 도착했다고 전화를 주셨다.

 

“고맙습니다, 제 책상에 올려놓아 주세요.” 딸은 서울대 대학 재학 시절 4년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장학금을 받은 자타공인의 재원(才媛)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올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난생처음으로 ‘거액’의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으니 그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

 

여하튼 이번에도 딸은 분명 장학금을 받을 듯 보인다. 딸은 다음 달 하순에 여름방학을 맞으면 집에 온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가난한 작가이긴 하되 그럼 딸에게 맛나고 비싼 음식을 꼭 사 주고자 한다. 수백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번’ 딸에게 어찌 고작 몇 만 원을 못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