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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연

첫선

여덟 살이 되어 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곤 시험을 봤는데 100점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의 칭찬이 쏟아졌다. 처음부터 그 같이 칭찬을 받으니 기운이 펑펑 솟았다.

그렇다. 그건 나로선 어떤 ‘첫선’이었다. 이후 청년이 되어 지금의 아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첫눈에 내 여자이지 싶었다. 당시는 내 직업이 멋진 호텔리어였다. 따라서 다른 젊은이들보다는 복장도 근사하고 씀씀이도 커서 제법 ‘가오(체면)’가 서던 즈음이었다.

즉 있어 보이던 시절이었다는 얘기다. 하여간 아내도 내가 맘에 든다며 결혼을 승낙했다. 그렇게 부부의 인연이 되어 산 지도 어언 34년이다. 그 사이 두 아이는 대학을 마쳤고 직장에도 들어갔다.

따라서 이제 집에는 우리 부부만 산다. 하지만 주근보다 야근이 두 배 이상 많은 경비원이 직업이다. 하여 아내는 허구한 날 과부 아닌 과부가 되었고 나는 심신이 자꾸만 망가지고 있다. 잠을 못 자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할 방법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런 화두를 놓고 고민과 장고(長考)를 거듭할 즈음 마침내 묘책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책을 내는 것이었다. 책은 제2의 명함이다. 따라서 명저(名著)의 저자라고 한다면 여기저기서 ‘성공학 강사’로도 부를 확률이 높다.

이런 것까지를 겨냥하면서 집필에 들어갔다. 그러길 어언 여덟 달, 여덟 살 국민학생 시절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쓴 글이 드디어 300페이지도 넘는 큼직한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다.

제목도 맘에 든다. <경비원 홍키호테>. 대체 경비원이 어쨌기에 돈키호테를 차용한 ‘홍키호테’란 말인가. 궁금하다고? 그럼 서점에 가서 확인해 볼 일이다. 책의 가격도 착하게 정했다. 겨우 1만 5천 원이다.

반면 여기에 들인 공은 그 천 배인 1천 5백만 원 그 이상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책은 어제 서울의 출판사에서 택배로 보낸다고 했으니 오늘 중 받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맘이 설렌 까닭에 어제는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음에도 몇 번이나 깼다.

오늘도 야근이다. 하지만 책 고사(告祀)를 지낼 용품의 준비 및 기타 지인들께 기증할 책의 준비 차원으로 오전에 출근할 생각이다. 화창한 5월의 봄부터 시작한 책 한 권의 집필이 칼바람까지 불면서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라는 그야말로 한겨울의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첫선을 보인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그 책이 저만치서 화사하게 웃으며 달려온다. “홍 선생, 걱정 마슈. 반드시 대박 날 거유!”